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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G'/하루 한편 글쓰기

마스크 1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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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니G 입니다. 저는 셀러이기 전에 여러 사람입니다.

글을 쓰고 싶어하고, 세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캣맘이며, 한아이의 엄마이고 또 아내이이지요.

그래서 셀러 생활이외에 작은 잡다한 글들을 블로그에도 기재 해 보려고요.

매일 꾸준히 글을 올리는 다짐을 해봅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Susanne Jutzeler, suju-foto님의 이미지 입니다.  

 

아이는 이제 제법 손이 야무졌다. 억지로 씌우려는 마스크를 뭉뚱 한 손으로 휙 잡아 던졌다.

“NO.” 발음도 이제 꽤 사람다워졌다. 자신의 고집이 나타나고 싫음과 좋음이 울음이 아닌 말로써 표현되었다. 이년 일생 처음 접해보는 갑갑함에 그 네모난 물건에 대한 적대감을 날카롭게 나타냈다.

 

십여분을 실갱이하다 전화를 들었다.

나 오늘 못 만날 것 같아. 한국 왔는데, 신천지가 터질게 뭐람. 애가 마스크도 안쓰는데 애 데리고 나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남편에 시댁에 나 이혼 감이야.”.”

에둘러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깬다.

아이는 이주 째 집에만 있었다. 처음 기억하는 겨울이 참 따뜻하기만 할 것이다.

살살 달래볼 요령으로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꺼낸다.

이거 쓰면 엄마랑 같이 키즈카페 갈 수 있어.” 바로 신천지 터지기 직전 아이와 나는 키즈카페를 다녀왔다. 물론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실내 놀이터, 키즈카페와 비슷한 곳은 많았지만 역시 한국의 키즈카페는 정말 아이와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키즈카페는 아이의 동경이다. 아이는 천국 같은 눈망울로 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키즈카페는 키즈카페이고 그 네모난 물건은 용납 못 할 듯했다..

아이와 한바탕 실랑이 후 그래도 마켓은 가야겠다 싶어 유모차에 레인 커버를 씌워 유모차를 밀고 길을 나섰다. 마켓 배송도 갑자기 주문이 몰려 서버가 닫고 또 이미 예약할 수 있는 배달 날짜의 슬롯들은 다 차 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웬 돌림병이란 말인가.

하루면 전 세계를 갈 수 있는 기술력은 전 세계를 병의 발생지로 만들었고, 또 전 세계의 문을 닫아버렸다.

 

기대했던 한국행 여행은 엉망이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피해야 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엄마랑 살까? 아빠랑 살까? 의? 전형적인 질문에서 철이 없던 나는 늘 공부를 잘하는 언니에게 관심이 쏠려있던 엄마를 포기하고 늘 우리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아버지와의 서울 생활은 험난했다. 이미 새 결혼을 한 아버지는 새로 결혼한 부인에게 나의 존재를 숨겼고 나는 아버지의 집 지근거리에 살면서도 하숙을 이어갔다. 결국 나의 존재는 새 부인에게 발각이 되어서 내가 유배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취직을 하고 돌아오지 않음으로 서로의 연은 끊어졌다. 이번 한국 일정에 서울 방문이 없이 친한 친구가 사는 부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나의 모국이다.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이를 보낼 학교도 정해놨었다. 그리고 늘 만나면 나를 손님 대하듯 하는 엄마와의 약속도 있었다.

 

남편의 장기 필리핀 출장으로 인해 어차피 주말밖에 집에를 오지 못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서의 비행거리와 한국이나 비행시간은 같으니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아이에게 한국말도 가르치고 싶었기에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교포인 남편도 한국에서 꼭 살아보고 싶었기에 우리는 작년부터 부지런히 준비하여, 겨울이 끝나갈 이월 초 코로나 확진자가 슬금슬금 나옴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안전한 느낌이 들어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의 무수한 병원 방문 예약, 아이의 놀이학교, 그리고 한국 음식점들의 방문들은 다 물거품이 되고, 최소한의 방어구인 마스크를 거부하는 아이로 인해 임시로 빌린 작은 아파트에 갇혀 버렸다.

 

비도 오지 않는데 레인커버로 무장된 유모차를 실내에서 열심히 밀며, 무엇을 미리 사놔아야 할까 생각하며 무한 반복 마켓 안을 돌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필리핀에서 철수됐어.. 싱가포르로 급하게 어젯밤에 돌아왔는데, 오늘부터 필리핀이 락다운 되더라. 당분간 필리핀 프로젝트는 재택근무로 하기로 했어.” 남편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당장 한국으로 오라는 나의 말에 언제 갑자기 싱가포르 회사로 출근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몸을 사리는 남편 말에 짜증이 올라왔다.

 

"싱가포르로 출근해야 하면 돌아가면 되지!" 나의 말은 그저 아무 의미 없이 맴돌았다.

호주 여권을 소지한 남편은 교포들의 전형적인 특성이 몸에 배어 있었다. 늘 먼저 미안하다 하고, 늘 조심하는 성격이다. 영어를 잘 못하시던 어머님과 같이 생활하면서 남에게 무슨 말 듣는 상황을 병적으로 피했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유학생으로 외국에서 살던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어린 내가 외국에서 무시당하지 않는 방법은 말을 잘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의제기와 유학생이라는 비자 상의 약자라는 상황을 상대방에게 이해시켜야 뭐든 굴러갔다. 남편은 한국에 들어오지 않겠다 선언을 했고 아이와 단 둘만 남은 것이다.

‘우리끼리만. 가끔은 우리 둘만도 좋은 추억이 될 거야.' 혼자 마음을 달래며,

가만히 레인커버 안에서 잠이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스크를 거부하며 한바탕 울었던 까닭에 눈물 자욱이 눈가에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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