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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G'/하루 한편 글쓰기

마스크3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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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심각한 고려대상은 아니었다. 남편의 경제력은 우리 세식구의 생활을 버텨 주었고, 내가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잘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저 내 용돈이나 아이의 미래를 위한 적금정도 보탤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서른 여섯의 나이에 낳은 아이는 충분히 너무 연약한 존재였고 예뻤기에 남편과 나는 임신 때부터 아이를 돌보는 전업주부로 있기로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다. 아이가 좀 커 나가자 우울감이 찾아왔다. 이제 나는 그저 엄마로써만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일이지만 초라하고 힘든일이었다. 왠지 돈벌어 오는 남편의 돈을 쓸때면 괜시리 눈치가 보이고, 다른 일하는 엄마들을 보면 부러워만 졌다. 전업엄마의 선택은 나였으나 시댁은 시댁의 충고를 내가 들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그후로는 조금 더 충고의 폭을 넓혀갔다. 물리적 거리를 무색하리만큼 매일 매일의 아이의 사진이 나에게서 남편에게 또 남편에게서 시댁에게 10분도 걸리지 않은 채 넘겨졌고, 너무 작은 레고 블럭은 치워라, 아이가 낫또를 먹더라 후쿠시마 무섭지 않느냐, 단추있는 옷은 아직 입히기에 이르지 않느냐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뭐 문자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그냥 네네 대답으로 넘어가고는 남편에게 아이의 사진이나 비디오를 보낼 때는 자체 검열을 하고 보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대한 말씀이 오신 후엔 그냥 지쳐 시댁과 있는 단체 톡에 답을 남기지 않았다. 눈치 빠르신 어머님은 대충 내가 어떠한 마음인지 감을 잡으신 듯 했다. 급작스럽게 시댁 단체 카톡에 아무 말도 안올리는 나에게 조금 서운 하신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이상 어떠한 말도 하진 않으셨다. 우리는 이산가족인 채로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의 한국말은 이제 꽤나 유창해졌다. 친구들도 생겨서 주말이 되면 누구 엄마 누구 엄마 어린이집 같이 보내는 엄마들과 키즈카페도 다녀오고 저녁이 되면 남편과 비디오 콜로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했다. 중간 중간 코로나는 심각해지기도 하고 정말 좋아지기도 했지만 호주 국적인 남편은 여전히 한국을 못 들어왔고, 우리는 여전히 이산가족이었다.

아빠를 많이 찾던 아이도 이젠 익숙해 지는 듯하고, 나또한 남편 없이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 질무렵, 남편 혼자만이 더이상 지금의 생활을 유지 할 수 없다고 호소 하기 시작했다.

그가 올 수 없으니 우리가 갈 수 밖에 없나? 라는 고민이 머릿속에 싹틀무렵

규율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이제는 마스크를 잘 쓰기 시작했고 충분히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돌이 막지나 아가 같던 아이는 7개월 사이 훌쩍 커버려 어린이 티가 슬슬 나기 시작하고 엄마와의 거래가 조금씩 가능해지고 있었다.

여느 평일 아침, 아이의 아침밥을 먹이고 어린이집 유니폼을 입혀놓고는 아이의 가방에 물병을 넣고 있는 사이, 아이가 혼자 신발을 신겠다고 한참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왼쪽 오른쪽을 바꿔서 신발을 신어놓고는 멋지게 짜잔 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신발을 제대로 신겨주면서 마스크 쓰자 하니 꽤 능숙한 손매로 혼자 마스크를 귀에 거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왔다.

 

우리 이제 비행기 타고 아빠에게 갈까?”

응 아빠한테 가자!” 마스크 안에서 아이의 입이 웃고 있는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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